- 일진샷시, 최영환 대표
- 창호 대리점 ‘중요 제작’, 미래기계와 함께한 15년
국내 창호 시장에서 고층화되면서 알루미늄 창호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근대적 창호의 시작이다.
이후에 플라스틱 계열의 PVC창호가 생겨나면서 창호 시장의 큰 변화가 찾아 왔다.
이후부터 현대적 창호는 알루미늄과 PVC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근현대적 창호 시장을 겪으면서 성공적인 창호 사업을 이끌어온 최영환 대표를 만났다.
창호 시장의 유통 핵심은 ‘대.리.점’이다. ‘압출 - 대리점 - 고객’ 창호 분야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자의 나름대로 역할이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대리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리점이 ‘가공’을 통해 압출과 고객을 이어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40년 중 20년은 알루미늄, 20년은 PVC
오랜 세월 동안 창호 시장 다양한 경험
일진샷시 최영환 대표는 ‘창호 제작 전문가’이다. 한 분야에 어느 정도 오래 경험하다보면 전반적인 시장을 이해하고 흐름까지 알 수 있다. 최 대표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여기에 역사 또한 ‘40년’이다. 나이로 치자면 유혹에 흔들림 없는 ‘불혹(不惑)’이다. 볼혹은 그만큼의 쌓여온 인생답게 내 판단 만으로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창호 시장에서 그가 그럴 것이다. 누그든 창호 관련 대화를 하면 핵심을 금세 이해하고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에 대해서는 가까이 하지 않는 그이다. 일진샷시는 40년 전 그 시대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창호를잘 모르지만 ‘할 만한 일이다’라는 지인의 설득에 의해서 창호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년은 알루미늄 창호를, 20년은 PVC창호를 다루면서 그는 이 시장 사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85년 경 처음 창호 입문을 알루미늄 취급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창업 이후에도 일정 기간 알루미늄을 다루 었다.
“처음에는 알루미늄으로 사업을 먹고살 정도로 잘 운영 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PVC창호가 도입되면서 알루미늄 창호 비중이 점점 줄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PVC창호 도입을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지방 시장에선 창호 브랜드보다는 대리점 역량
고객을 고객답게 잘하는 ‘밀당’ 중요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2005년 경 PVC프로파일을 다루기 시작했다. 시작할 당시 최 대표는 PVC 시장에 늦게 진입했다고 생각했지만 ‘발코니 확장’이 대세가 되면서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처음 PVC사업을 할때는거래처들이 순칭에 있는 PVC창호 대리점에 발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경쟁자의 부족한 점을 내가 채우면 된다. 광양에도 1~2군데의 창호 대리점이 있었지만 조금 거리가 있는 순창에서 물건을 가져다 쓴 것이다. 처음 중소 PVC창호 브랜드 ‘시안’으로 시작을 했다. 오는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했다. 그리고 납품 시간 준수와 깔끔한 제작을 모토로 밤 10시까지 배우면서 일을 했다. ‘성실’과 ‘착 실’ 두 단어만 보고 앞으로 나아갔다.
중소 PVC창호 브랜드 ‘시안’은 인지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시안의 내부 사정으로 후발 PVC창호인 ‘예림’으로 갈아탔 다. 최영환 대표는 왠만해서는 한 거래처와 오래가는 게 자신의 지론이었지만 그때 자신도 많이 아쉬웠다고 귀뜸한다.
창호 시장에서 고객이 브랜드를 선정하고 오는 사례는 대기업 브랜드만 그렇다. 모든 것이 대리점 대표의 인물과 거래 조건, 깔끔한 창호 제작 등이 주요한 선택 요인이다. 광양 지역에서 입소문이 난 최 대표 창호 가게는 날이 갈수록 업무량이 늘어났다.
“알루미늄을 할 때도 그렇지만 PVC를 하면서 매출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런 이유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오던 것은 창호 파트에서 제작입니다. 제작을 잘해서 시공하는 또는 인테리어 업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납품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고객을 고객답게 밀당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광양 500평 자가땅, 창호 사업으로 일궈
창호대리점 제작이 생명, 미래기계와 함께
현재 전남 광양읍 은장도길 47의 자가땅 500평 규모에 3개 동으로 창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직원은 단촐하게 3명이다. 40년의 노하우가 있어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하게 납품을 맞추고 있단다. 가공 및 제작에선 제작 동선을 어떻게 만들고 발주 순서를 어떻게 정리하냐에 따라서 생산성은 천지차가 된다. 여기에 광양이 주 고향인 최영환 대표에 게는 지리적인 이점까지 있었다.
이러한 요건들로 그는 창호로 자식을 키웠고 500평의 자가 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130평의 근처 땅까지 구입할 정도. 일진샷시는 방충망도 취급을 하는데, 국내 방충망 시장의 변화를 가져다 준 고구려시스템 제품을 사용한 다. 창호 관계자라면 중소기업의 시판 창호 업에서 가장 전성기 시대는 ‘원룸 시대’이다. 원룸의 인기는 전국적인 분위 기였는데, 일진샤시도 그 시기에 돈좀 벌었다.
이렇게 성공적인 사업은 단적으로 창호 대리점의 창호 제작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창호 제작을 위해서는 창호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의 능률적인 작동도 중요하지만 A/S가 없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일진샷시는 창호기계 전문제작기업 미래기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모든 제품이 미래기계 제품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
일진샤시가 미래기계와 연을 맺은 것도 15년 전 이야기다. 최 대표는 “미래기계 제품을 사용해서 좋은 점은 기계도 좋지만 A/S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다”며, “한창 바쁠 때 꼭기계가 이상이 생기는데, 그때 미래기계 최종성 대표가 직접 여러 가지 도움을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창호 시장 입문이 자랑스럽다’
앞으로의 창호 시장은 원룸과 같은 신축 빌라 시대는 더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인구도 줄고 광양 지역만 해도 아파트가 미분양이 골칫거리라고 한다. 일진샷시 최영환 대표는 앞으로는 있는 집을 꾸며사는 리모델링 시장이 대세일 것이고 이를 위해 리모델링 전시장도 생각 중이다. 당분간 경기를 지켜보고 판단할 생각이다. 창호 시장 입문에 대해 지금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그는 답한다.
“창호 시장 입문은 열심히 일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가족과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나에겐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