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8(일)
 
  • 티롤릿코리아 대리점 명작공구 김명수 대표
  • 연마석 판매 전국 1위 전동공구 방대한 지식, 유튜브 방송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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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공구 김명수 대표

 

요즘 방황하는 젊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명작공구 김명수 대표이다.

그는 무일푼으로 전동공구 시장에 진입해 성실함 하나로 전동공구의 방대한 지식을 얻었다.

전동공구에 입문하는 이들 누구나가 다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행력도 빠르다.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이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생각만 한다. 하지만 그는 유뷰브로도 나름대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연마석 시장에서 티롤릿은 새로운 유통구조를 만들었 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티롤릿이 가장 먼저 언급하는 대리점이 바로 명작공구이다. 명작공구 김명수 대표는 단시간에 국내에서 티롤릿 제품을 가장 잘 판매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연마석은 사용처에 따라 선택되는 물건 이라기 보다는 철물점에서 가격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제품이다. 

 

이러한 연마석에 대해 김명수 대표는 판매 자신감을 가졌고 놀라울 정도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티롤릿코리아는 연마석 수입 유통사, 명작공구는 국내 판매대리점이다. 티롤릿코리아 대리점 중 명작공구는 당연 ‘탑’이다. 여기에 전동공구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김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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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공구 매장 내부 사진

 

2023년 명작공구 창업에 담긴 의미 

공구 현장 판매에 창업에 대한 동기 부여

명작공구는 2023년 3월에 창립한 법인회사이다. 지난해 설립한 회사가 연마석도 팔고 전동공구도 판다고 생각하면 이야말로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작공구라는 회사 이름에는 김명수 대표에게 ‘강한’ 의지와 반대로 큰 ‘아 픔’이 동시에 담겨있다. 인생사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

 

김 대표에게도 전동공구와 인연을 맺기전부터의 스토리가 있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2009년이며, 31살 그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창업을 했다. 10대에 방황하면서,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 어릴적 표현으로 ‘비행’ 청소년이다. 하지만 김명수 대표에게는 자신 만의 삶의 방식을 채택했다. 학교를 그만 두는 대신에 또래 친구 들보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수업을 미리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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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를 기다리는 명작공구의 전동공구 사진

 

김 대표가 전동공구 시장에 입문한 것도 아이러니컬하다. 벌금 천만원이 없어서 친척이 운영하는 전동공구 대리점 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동공구 판매 대리점에서 일을 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천지를 보았다. 그 당시에는 전동공구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트럭에 전동 공구를 싣고 공구가 필요한 현장에 직접 방문해 ‘현장 판매’ 를 했었다.

 

“저는 전동공구 현장 판매로 몇 백만원을 손에 쥐는 것을 보고 돈을 버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그야말로 ‘돈’맛을 알았 어요. 이게 제가 전동공구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처음 동기 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일은 운전이었는데, 한번은 물건을 직접 판매를 했는데, 칭찬받을 줄 알았던 저에게 나무라는 친척을 보고 회의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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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공구 매장 내부 사진

 

지인으로부터의 회의감과 박탈감 

새로운 터전에서의 희망, 그리고 드디어 홀로서기

이런 상황에서 우연하게 동종업계에서 자신이 또래보다 현저히 낮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립을 결심한다. 사업을 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해 그래도 다홍치 마라고 친척에게 부탁을 했지만 처음엔 승락했다가 자신의 직원의 반대로 도움을 못 받았다.

 

이에 다시 구로 전동공구 업체에 취직을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목표가 확실했기에 새로 입사한 회사에 월급은 주는 대로 받는 대신 전동공구 업체 운영에 전반적인 내용을 오픈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를 승낙받고 매입처, 매입관리 등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책임 지게 되었다.

 

성실함이 주특기였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어준 당시 대표와의 의리를 지키며 이직하지 않았다. 가는 마음에는 오는 마음이 있듯이 일하고 있던 회사의 사모가 그의 월급을 관리해주었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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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입구 사진

 

2009년 드디어 구로의 1층 전동공구점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반 자금도 부족했고 큰도매 상과 경쟁이 되지 않아 발로 뛰는 것이 김명수 대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또한 도매 업체에서만 일을 해서 소매는 잘 몰랐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그의 영업 능력은 인정되었다. 인수한 전동공구 점에서 악성재고가 많았지만 이를 단번에 해결하게 된다. 이후 소매점은 직원에게 맡기고 자신은 도매에 치중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소매직원이 제품을 모르다보니 판매를 전혀 못했어 요. 도매를 포기하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다는 생각에 소매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소매 판매에 자신이 붙었고 주위에서 가장 잘파는 소매점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소매점을 통해 전동공구에 대한 보다 넒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었어요.”

 

전동공구 소매점을 하다보니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아야했다. 품팔이로 지식을 얻은 결과 김 대표의 매장은 ‘공구 다이소’로 불리었다. 그 매장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제품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소매를 시작하고 새운 목표대로 이룬 것이다. 사업이 날로 번창을 했고 온라인 분야에 자신의 여동생이 합세를 하면서 상승곡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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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공구의 티롤릿 제품으로 행사하는 장면

 

집안의 악재로 방황으로 사업은 엉망 

마음 잡고 다시 시작했지만 변해있는 유통 시장

그러던 중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 집안에 불화가 생겼다. 아픔까지 겪게 된 그는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6개월 동안 매장을 나오지 않을 정도. 

 

폐인이 되어 정신없이 방황을 했고 자신의 수중에 돈이 다 없어지고야 정신을 차렸다. 이에 과거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 명성공구에서 명작공구로 회사명을 바꾸었다. 김명수 대표가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영업을 시작할 무렵 시장은 많이 변해있었다. 현장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온라인 판매도 5% 마진을 못지켰다.

 

명작공구는 과거에 비해 온라인 분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우연한 계기로 경매진행 유튜브에서 공구매 니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튜브에 눈을 떴다. 그전에도 유튜브를 했지만 유튜브로 돈버는 법을 조금씩 섭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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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표가 운영하는 ‘명작공구’ 유튜브를 위한 촬영 공간

 

이후에 유튜브 방송이나 틱톡 등으로 손님을 매장으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1:1 상담에서는 자신이 있던 김 대표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온라인 마케팅으로 오프라인 활성화를 1차 목표로 하고 1호점이 매장을 2호점 매장 오픈과 함께 전동공구 경매까지 2차 목표까지 디테일하게 세웠다.

 

이 당시 알고지낸 영업사원이 티롤릿으로 이직하면서 연마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품의 우수하지만 약했던 홍보를 인지하고 유튜브 방송을 진행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매출은 크지 않지만 연마석으 로는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대리점이 된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김명수 대표는 현재 유튜브도 직접 촬영 하고 있으며,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명작공구에는 800개 제품을 유통하고 있는데, 경쟁 업체 대비 경쟁력이라면 공구에 대해서는 물어보는 것에 대한 모든 답을 줄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이 A/S 가 가능한 제품만 판매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책임지는 제품 만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기에 성공한 김명수 대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잃어 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구 전파에 노력하는 그에게 공구 노하우를 펼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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