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발코니창, 문화의 정책의 교차
- 유럽 창문이 작은 이유가 에너지세이빙일까?
창문은 단순한 빛과 바람의 통로가 아니다. 유럽에선 과거 창문 개수나 크기에 세금을 부과했고, 이는 좁고 긴 창 구조를 만들어냈다. 반면 한국은 자연광과 조망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발코니 창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발달했다. 오늘날 창호의 크기와 에너지 효율 논의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정책, 문화, 역사, 기후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의사결정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1696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창문세(Window Tax)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난방용 벽난로에 부과하던 세금이 있었으나, 집 안으로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는 난로 대신, 외부에서 수량을 확인할수 있는 창문을 세금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창에 세금을 매겼던 유럽 벽을 남기고 창을 줄이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시기가 되자 창문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이는 당시 고가 사치품이었던 유리를 많이 쓰는 부유층을 겨냥한 조세로, 사회적 형평성이 라는 명분도 갖췄다. 하지만 결과는 흥미롭다. 사람들은 창을 막거나 폭을 줄였고, 이는 세로로 긴 창이 유행하는 건축 양식으로 이어졌다.
영국 도시들에서는 지금도 벽돌로 창을 막은 ‘가짜 벽면’ 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이 아닌, 세금 회피의 흔적이다. 결국 조세 정책이 건축의 미학과 구조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반면 한국의 창문은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크다. 고층 아파트의 거실에는 유리 면적이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발코니 창’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같은 구조는 1970~80년대 고속 성장과 도시화 시기에 아파트 보급과 함께 자리 잡았다.
POINT
17세기 영국과 프랑스, 창문 개수 또는 폭 기준으로 세금 부과
외부에서 확인 쉬운 창문은 조세 수단으로 효과적
세금 회피 위해 창문을 작게, 적게 만드는 ‘절세 건축’ 등장
한국의 발코니 창 ‘자연을 향한 열망’이 만들어낸 구조
한국은 조망권과 자연채광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햇살이 잘 드는 남향을 선호하며,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한 집이 ‘좋은 집’으로 인식된다.
거실의 창을 넓히는 것은 단순한 미관이나 채광을 넘어서, 주거의 질을 상징하는 요소가 됐다.
2000년대 이후로는 발코니를 실내로 확장하면서 창면적이 더욱 커졌다. 단열 성능이 우려되었지만, 복층유리·로이유리·단열 간봉 등고성능 창호 기술이 이를 극복했다. 즉, 한국의 대형 창호는 기술과 문화의 결합체라 할 수 있다.
POINT
고층아파트와 함께 발달한 대형 창호 문화
자연광, 조망권, 탁 트인 시야를 중요시하는 생활문화
실내 확장과 단열 기술로 에너지 손실 극복
에너지 절약? 창문 크기가 아니라 기술과 설계가 핵심
창문은 건축물에서 열 손실이 가장 많은 부분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창을 줄이는 것이 에너지 절약에 효과적”이라고 주장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창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복층·삼중 유리, 로이(Low-E) 코팅, 단열 간봉 기술은 대형 창에서도 뛰어난 단열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 게다가 스마트 유리, 전동 외부차양 등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솔루션도 보급되며, 창면적과 에너지 소비의 직접적 상관관계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물론 유럽은 전통적인 건물 구조와 기후, 세금제도의 영향으로 창을 작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의도보다는, 조세 회피와 건축 기술의 한계가 맞물린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POINT
큰 창 = 에너지 낭비라는 고정관념은 현재는 설득력 낮음
유럽은 좁은 창 유지, 한국은 기술로 극복
단열·차양·로이유리 등 기술 발전으로 창의 자유도 확보
거시적 시각이 필요한 창호 정책 세금과 기술의 협력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건축 정책에서는 ‘에너지세’나 ‘창면적 제한’ 같은 방안이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창문세의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창을 줄인다고 해서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연채광이 줄어들어 조명 사용량이 늘고, 주거 쾌적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창호 성능을 높이고, 고성능 창호의 사용을 장려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이다. 예컨대, 한국의 ‘제로에너 지건축물 인증제’처럼, 건물의 종합적인 에너지 성능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국가와 창호업체, 건축사, 시공자가 협력해 단열 성능을 높이는 시스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협력은 단순한 규제 중심이 아니라, 기술과 거시적 방향성을 결합한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POINT
창면적에 세금을 매기는 논의도 일부 존재
그러나 중요한 것은 창호 기술의 확산과 인센티브
국가·업계 협력이 이뤄져야 실질적 에너지 절감 가능
챗GPT가 그려준 중세 창문
창은 빛과 바람만 통하는게 아니다
창문은 단지 외부와 연결되는 개구부가 아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세금 회피의 대상이었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연과 연결되는 통로이며, 미래의 에너지 전략에선 기술과 정책이 만나는 접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좋은 창’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거시적 사고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삶의 질과 주거 문화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작은 창’이 정답일 수도, ‘큰 창’이 정답일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창이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